Madame Freedom: Live re-score by Paul D. Miller aka DJ Spooky
Nabi Art Center, Seoul, 2007
Korean American Film Festival 2011
The Madame Freedom rescore project is included in Paul D. Miller’s year long residency at The Metropolitan Museum
• Movie: Madame Freedom
• Revised romanization: Jayu buin
• Hangul: 자유부인
• Director: Hyeong-mo Han
• Writer: Bi-seok Jeong, Seong-min Kim
• Soundtrack Composer: Kim Yong-hwan
• Cinematographer: Seong-hwi Lee
• Release Date: June 9, 1956
• Runtime: 124 min.
• Language: Korean
• Country: South Korea
Cast
• Park Am… Professor Jang
• Kim Jeong-rim… Oh Seon-yeong
• No Gyeong-hui… Choi Yun-ju
• Joo Sun-tae… Baek Seon-saeng
• Kim Dong-won
• Go Hyang-mi
• Yang Mi-yeong… Park Eun-mi
• Lee Min… Shin Chun-ho
• An Na-yeong
• Go Seon-ae
// P.Art.y 2007
// KOREAN AMERICAN FILM FESTIVAL
In 2007 Paul D. Miller aka DJ Spooky was commissioned by Art Center Nabi in Seoul, Korea and the Korean American Film Festival in New York to re-score this classic film with a 21st century soundtrack. In March 2011 Miller worked with renowned Korean violinists Eugene Park, Sean Lee, and experimental cellist Okkyung Lee to create a new string quartet score based on Miller’s compositions for Madame Freedom that was edited live using his innovative iPad/iPhone mixing software.
Context:
Madame Freedom was one of the defining films of the “Golden Era” of Korean cinema in the 1950’s. It was based on a serialized novel that itself was an adaptation of Jung Bi-suk’s controversial 1954 novel, Madame Freedom, which was serialized in Seoul Newspaper throughout most of the post-war Korean late 1950’s. Madame Freedom, along with Kim ki-young’s 1960 smash hit film “The Housemaid,” was considered to be highly technological for its era with innovative use of camera angles, a soundtrack involving live bands and orchestras, and above all, the use of record players!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such films led to the immense popularity of Korean cinema throughout contemporary Asia. One could argue that Madame Freedom is the DNA of the genre known as “hallyu” 한류 or 한국드라마 or “Korean drama.” Most critics would say that Madame Freedom is the first Korean film to utilize crane shots and sound in many novel ways – record players are heard through walls, lighting in clubs is extended into dance scenes while the crane moves through the audience, etc
Essentially, Madame Freedom was the first large-scale commercial “dramatic” box office success after the Korean War. It essentially created most of the things one associates with Korean in cinema in the 1960’s and it would would also provide a template, for better or for worse, for future Korean films for well into the 21st century, leading to the success of more radical films like Bong Joon-Ho’s “The Host” (2007), Gina Kim’s “Never Forever” (2007), and even Im Sang-soo’s 2010 remake of Kim Ki-Young’s classic “Housemaid.”
Korea’s occupation by the Japanese Empire after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of 1910 set the tone for many Japanese artforms like “benshi” (the narration a film with a storyteller standing in front of the screen) which evolved into Korean cinematic traditions, where they were called pyônsa (변사). Miller’s re-score takes on the role of the storyteller as part of the new soundtrack – the string quartet work acts as a major component of the film at every level.
When people change, societies change. In the 1950’s Korea went through a drastic modernization process. After the Korean War ended, South Korea was firmly embedded in a Western cultural sphere, families were put into radically unexpected contexts, and the rise of independent women changed the face of society. That is what this film is about.
In light of the historical background and context of military dictatorship, a divided and occupied country looked for cinema to explain the changes that were rapidly occurring in society. In one sense, the film is a cautionary tale about the destruction of a household by immoral and illicit behavior by the mother of a family becoming more and more hypnotized by hyper-consumerism. The film was viewed as a metaphor of the harmful westernization of all traditions in post war Korea, but when one views it in this light, that process was even more destructive and rapid in reality. The end of the film arrives when Sun-young’s husband closes the door on her, even as their son is cries out to her, sobbing, “mommy, mommy.” Throughout the film, the characters breath fogs with the cold of the atmosphere, and by the end of the film, there is snow on the ground: Sun-young has nowhere to go. Because of the stigma attached to her now, she can neither come back home nor get a new job. It’s a sad but visceral indictment on the “democratic” Korean society in the 50’s: the old world culture cannot keep pace with the capitalistic growth, cannot codify in time, leaving only victims in its wake. The original soundtrack to the film, composed by Kim Yong-hwan, implied dance as an escape from the strictures of a highly stratified society. Miller’s new score evokes the jazz of the nightclubs of the 21st century, and uses electronic music he composed to create more dynamic tensions in the story, and foregrounds the visual rhythm of the film’s editing techniques.
What Madame Freedom did better than any other film of the “Golden Age” was capture and convey the anxiety of the postwar Korean society. The Korean War was a stalemate in 1953. President Syngman Rhee, backed by the U.S. government of the Eisenhower Administration, exercised a dictatorial control over the nation. The Korean economy was entirely dependent upon the U.S., even as Seoul and other main cities were rapidly modernizing. All of these contexts linger of Madame Freedom and give the story an even more poignant frame of reference. Miller’s new soundtrack evokes the uneasy tensions between classic cinematic storytelling and the 21st century techniques of digital media composition in collision with Madame Freedom’s celebration of consumerist desire in a rapidly modernizing country.
// Madame Freedom (.doc)
Interview with Paul D. Miller in NYCultureBeat
“백남준은 나의 영감, 한국 문화는 멋지다”
한국영화사에서 스캔달이 됐던 영화 ‘자유 부인’(1956)은 원래 정비석씨가 신문에 연재하던 소설이었다. 대학교수의 부인(오선영)이 양품점에 나가 일하면서 댄스 클럽에 발을 들여놓은 후 옆집 청년(신춘호)에게 춤을 배운다. 교수 부인의 불륜이 당대의 논쟁 거리가 됐다.
뉴욕 대중예술계에서 최전선에 있는 DJ 스푸키(DJ Spooky)가 한형모 감독의 흑백영화 ‘자유 부인(Madam Freedom)’의 음악을 새로 작곡했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은 올 10월 26일 DJ 스푸키의 오리지널 곡을 라이브로 공연하면서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DJ 스푸키의 코리안 커넥션(Korean Connection)은 오래 전 시작됐다. 워싱턴 DC에서 자랄 때 그의 베이비시터가 한인이었으며, 다 장르를 크로스오버하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바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다. DJ 스푸키는 한인 클래식 앙상블 안트리오에게 ‘보자기’라는 자작곡을 헌사했으며, 셀폰을 연주로 잘 알려진 실험음악가 보라 윤과도 협연해왔다. 그는 K-Pop과 한국영화의 열혈팬이기도 하다.
프랑스 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지성을 바탕으로, 클래식과 힙합, 헤비메탈과 전위음악, 그리고 판소리까지 샘플링과 리믹싱으로 새 음악을 창조하는 DJ 스푸키의 스타일은 ‘비빔밥’과도 닮았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 동서고금의 다양한 예술 장르를 믹스&매치시키는 21세기형 아티스트다.
-어떻게 ‘자유 부인’의 음악을 작곡하게 됐나.
“오래 전 한국에 있는 아트센터 나비(*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 관장, 노소영)의 연락을 받았다. 내게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자유 부인’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 한국에서 만들어진 재즈 영화였다. 난 이 프로젝트가 동아시아에서 지난 50년간 클럽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나비에서 내게 몇 가지 아이디어를 주었고, 우리는 재즈, 록, 그리고 한국의 현대와 역사적인 장면에서 여러 음악의 영향에 대해 토론했다.”
-‘자유 부인’을 처음 보았을 때 생각은.
“완전히 반해버렸다. 주인공들이 50년대 서울에서의 지하 재즈 파티에 간다. 조연은 DJ이며, 주인공의 남편은 바람난 교수다!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콜라쥬 같은 접근 방식을 취했다. 영화에 계속 나오는 메인 테마는 유명한 재즈 스탠다드 넘버 ‘고엽(Autumn Leaves)’이다. 이 영화를 본 후엔 서울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영화를 자신과 동화할 부분이 있었나.
“우리 집안도 학구적이다. 엄마는 디자인 역사학자이며, 아버지는 하워드대학교 학장이다. 부모님 다 가르치시며 작가이다. 한형모 감독의 영화는 충격적이었다. 난 사실 스토리텔링이나 역사적인 메타포의 사용 같은 아시아 영화 뿌리의 굉장한 팬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한국에 대한 혁신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데, 이것은 한국 바깥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난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한국과 아시아의 영화에서 어느 정도 숨겨진 차원을 볼 기회를 주고 싶었다.”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은.
“’자유부인’의 사운드트랙은 전적으로 재즈에 바탕을 두었다! 또, 서구화 스트레스 아래에서의 관계와 근대 한국사회에서 로큰롤이나 이후 디스코, 그리고 힙합, 하우스, 테크노 등과는 달리 한국사회에서 급격한 변화를 이해하는데 재즈가 도움을 주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나는 바로 그 점을 탐구하고 싶었다. 난 첼리스트 이옥경(Okkyung Lee)나 바이올리니스트 션 리(Sean Lee)와 유진 박(Eugene Park) 등 훌륭한 연주자들과 앙상블로 공연한 바 있다! 반응도 좋았으며, 내년쯤 영화와 함께 투어할 계획이다.”
-작곡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이 점이 계속 무척 많이 생각해야 했다. 한국영상자료원(Korean Film Archive)과 아트센터 나비에서 위임받은 후 영화를 보았고, 클럽 문화를 흥미진진하게 쓰기 위해 사운드와 주인공들이 쓰는 비닐(!) 레코드를 편집했다. 영화 속에서 큐(cue)는 동기를 유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짜여 있었으며, 난 샘플링을 해서 시나리오에 돌려보냈다.”
-어떤 음악을 생각했나.
“난 여러 앵글에서 음악을 훑어보았다. 내 음악은 ‘퍼블릭 에너미’의 “밤 스콰드(Bomb Squad)”와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에서 ‘선 라(Sun Ra)’와 백남준, 에브가드 바레즈, 혹은 이아니스 제나키스 등의 전위 음악에서 소스를 가져온다. 가능하면 나는 범 인간주의적인 것과 예술에 함축된 것을 조응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 형식을 조사하려고 노력한다. 예술은 통합된 요소다. 그 동안 휘트니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에서 공연했으며, 곧 올 베이징 비엔날레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또한 책, 콘서트, 웹 프로젝트도 특히 백남준이 특별히 내게 준 영향을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게 나에겐 한국과의 커넥션이었다.”
-‘자유부인’의 오리지널 음악은.
‘난 흑인 배우들과도 작업해온 뉴욕 연극인 이영진(Young Jean Lee)의 팬이다. 난 판소리의 옛날 레코드를 샘플링해서 콜라쥬했다(이건 정말 세속적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샤만 음악이었다) 그리고 모던 재즈의 다른 시대로 가져가서 샘플링했다. 그 밖에는 내 iPad 앱(App)에 기초한 것이다. 지난 몇 개월간은 안타르티카(Antarctica) 프로젝트인 ‘빙하의 책(The Book of Ice)’를 위해 iPad로 공연해왔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기본적으로 그 책에서 그래픽디자인 작곡을 위해 쓴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그래픽디자인과 DJ 일의 관계를, 그러나 샘플링이라는 수단을 통해 생각하고 싶었다. 내 일의 대부분은 사운드에 대한 기억의 관계, 풍경, ‘사운드스케이프’, 그리고, 비욕(Bjork)의 앱 ‘Biophila’를 만든 스콧 스나이브(Scott Snibe)같은 앱 디자이너들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난 스튜디오를 안타르티카(북극)에 가져갔고, 북극에 대해 작곡했다. 그 외에는 샘플링이다. iPad로 영화를 작곡하는 건 재미있다.”
-음악에 사용한 악기는.
“현악 앙상블. 바이올린 2대와 첼로. iPad 소프트웨어를 통한 샘플 음악, 그리고 콜라쥬 모드로 가져간다. 결과적으로 참 잘됐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모든 것은 클럽과 가정 간의 긴장이었다. 접합하고, 펼치고, 반복하기다. 주인공들이 재즈 클럽에 있을 때 모던 댄서가 나와서 ‘한국의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 *파리에서 활동했던 미국 출신 흑인 댄서)’와 같은 동작을 보여준다. 압도적인 장면이다!!”
-원작이 금지되었고, 영화도 개봉 당시 논쟁거리였다. 그리고 한국 여성에게 ‘춤’하면 바람으로 연상되던 때가 있었는데.
“그 옛날 한국에선 많은 것이 금지됐다. 또한 지금의 남한 분위기에서도 블로거가 공산주의에 대해 농담했다고 감옥에 들어갔다고 하니, 여전한 것 같다. 여러 인종 정책도 뿌리 박혀 있다. 당시엔 한국의 일상에서 미군들이(지금도 그렇지만!) 과격한 방해물이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재즈를 듣기 시작하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하는 것이다. 한국 여성들이 독립적으로(!!) 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준다. 매우 흥미롭지만, 사실이다!”
-공연에서 음악만큼 이미지도 중요한데, 누구의 영향을 받았나.
“내게 영향을 준 영화감독은 장 콕토, 오손 웰즈, 존 카사베츠, 구로자와 아키라 그리고 백남준 같은 이들이다. 여기에 내 동료들인 DJ 크러시, DJ 샤도우, 컷 케미스트, 롭 스위프트, 큐버트, 믹스 마스터, 마이트, 마크 론슨, 재즈 작곡가 비제이 아이어와 제이슨 모란 등이다.”
-처음 한인을 만난 때는.
“어렸을 때 베이비시터가 한인이었다. 또, 워싱턴 D.C.의 다운타운에서 자랐는데, 한인들이 많았다!
-K-Pop을 들어봤나.
“무지 많이 들었다. K-Pop의 공식은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가 짬뽕된 옛날 마돈나 비디오 안에 있는 것 같은 춤이다.”
-한국에 가봤나.
“광주비엔날레를 비롯 몇 번 갔다. 난 코리안아메리칸영화제(Korean American Film Festival)의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맨해튼 한인타운에 가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식은 불고기다. 맵게 좀 해주세요!”
☞DJ 스푸키(DJ Spooky)
본명은 폴 D. 밀러(Paul D. Miller), ‘That Subliminal Kid’라는 예명도 사용한다. 1970년 워싱턴 D.C.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하워드법대(Howard University) 학장, 어머니는 부티크 운영자이자 흑인여성 디자이너의 역사를 연구한 ‘Threads of Time’를 집필한 의상 연구가다. 메인주의 보도윈대학교(Bowdoin College)에서 불문학과 철학 전공. 작곡가이자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며, 저술 작업도 해왔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아프리카관에 비디오설치작 ‘뉴욕은 지금(New York is Now)’으로 초대된 것을 비롯 휘트니 비엔날레, 독일 쾰른 루드비히뮤지엄, 쿤스탈레 비엔나, 앤디워홀뮤지엄 등지에서 작품이 전시됐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태평양의 바누아투섬까지 세계 각지에서 공연했다. 협연자도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에서 현대 작곡가 스티브 라이치, 류이치 사카모토,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 전위 음악가 로리 앤더슨, 데이빗 번, 모비(Moby),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그리고 소설가 폴 오스터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다. 또한, 한인 뮤지션 안트리오, 실험음악가 보라 윤, 첼리스트 이옥경씨와도 무대에 올랐다. 할리우드 무성영화 걸작인 D. W. 그리피스 감독 작 ‘국가의 탄생(Birth of The Nation, 1915)’의 음악을 작곡, ‘국가의 재탄생’이라는 멀티미디어 공연을 했다. 저술가로서는 2004년 MIT대 출판부에서 ‘리듬 과학(Rhythm Science)’을 냈으며, ‘사운드 언바운드(Sound Unbound, 2008)’ 그리고 최근엔 남극을 주제로 한 책 ‘빙하의 책(The Book of Ice)’을 출간했다.